미국의 오틀라오마의 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윈스턴은 버스 운전기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존재하던 시대라 아무리 노력해도 버스기사가 될 수 없었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윈스턴은 결국 다른 지역의 버스 회사에 힙겹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버스를 정비하고 청소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매일 출근 시간보다 한참 이른 아침 6 시에 회사에 나와 모든 준비를 끝내놓은 그는 입사하던 18 세부터 100 살이 될 때까지 81 년 동안 단 하루도 회사를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81 년의 근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는 날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윈스턴에게 "세기의 일꾼"이라는 표창장을 주었으며 회사는 그가 담당하던 구역을 "아서 윈스턴 구약'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가 '세기의 일꾼'이라는 표창장을 받은 것은 그의 꾸준함이었습니다. 꾸준함이 위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같은 요령을 피우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 조석으로 변화는 사회에 자신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의 위대함도 역시 꾸준함일 것입니다. 변화가 극심한 세상, 유혹이 많은 세상, 쾌락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세상이 바뀌어도 처음 시작했던 그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꾸준하게 감당하고 계신 분들을 보면 "세기의 신앙인"이라고 불러도 조금도 손색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그런 분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바로 '꾸준함'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냄비신앙이라고 했던가요. 금방 뜨거워졌다가 금방 차가워지는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신앙생활이 들쑥날쑥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결심한 것이 삼일을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예배의 생활은 꾸준합니까? 자신의 기도의 생활은 꾸준합니까? 헌신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몇 차례 광고를 하고 강조를 하면 열심을 내는 것 같이 하다가도 시들해집니다. 우리는 꾸준함이 위대한 것 인줄 알면서도 꾸준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꾸준히 운동을 하는 분들은 건강하게 생활합니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성실하게 꾸준히 공부를 하는 학생은 좋은 대학에 입학합니다. 훈련이 고되지만 참고 꾸준히 훈련을 한 선수가 경기에 좋은 성적을 냅니다. 악기를 배우는 악기를 손에서 놓지 말고 꾸준히 연습을 해야 악기를 다룰 수 있고,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며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요리사들도 보면 40 년-50 년 꾸준히 요리를 해오신 분들입니다. 꾸준히 했더니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쑥날쑥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과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의 신앙의 깊이는 차이가 나게 마련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강풍에 넘어지지 않는 것처럼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세상풍파에 시달려도 넘어지지 않습니다.